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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의 연인 '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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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1-09-06 14:3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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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칸딘스키(1886~1944)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러시아 화가이자 예술이론가다. 기하학적 추상의 탈인상주의 청기사파 화풍으로 후일 추상화의 창시자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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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는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했던 그녀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여성으로 성장했던 화가 지망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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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가 세운 사설 미술학교 '팔랑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뮌헨에서 가까운 무르나우에 정착하고 그 곳에서 두 사람은 많은 그림을 그린다.  '러시아인의 집'이란 뜻의 '루센하우스Russenhaue'에는 뮌헨을 대표하던 젊은 화가들이 자주 방문했으며 그들의 예술적 교류는 독일표현주의 '청기사파'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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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모스크바로 돌아 간 칸딘스키는 자신을 기다리던 '칸딘스키의 부인' 뮌터가 있던 뮌헨으로 돌아가지 않고 베를린으로 돌아가 바우 하우스의 교수가 되어 현대 추상화의 창시자로 유명인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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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집권으로 바우 하우스는 폐쇄되고 칸딘스키의 작품은 퇴폐미술로 찍혀 압수되어 소각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자 뮌터는 무르나우 집에 남아있던 칸딘스키의 작품을 지하실에 몰래 숨겨 보관하고 미술사학자 요하네스 아이히너와 결혼하면서 새롭게 되살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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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세계적인 탈인상주의 추상화가로 살던 칸딘스키는 전쟁이 끝날 무렵 별세하고 1949년 뮌터가 보관해 오던 칸딘스키의 그림 41점이 뮌헨 전시에 걸렸다.  ​칸딘스키는 그의 연인 - 뮌터에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치의 야만으로 부터 뮌터는  '연인의 그림'을 지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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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80세 생일  뮌터는 300점의 드로잉 작품과 유화 80점응 뮌헨의 미술관​에 모두 기증하고 칸딘스키의 젊은 날의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유명한 초상화가 렌바흐의 저택이던 '렌 바흐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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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식 미술관으로 새롭게 단장한 렌 바흐 미술관에는 화사한 칸딘스키의 그림들이 다시는 만나지 못했던 그의 연인 뮌터의 그림과 나란히 걸려있어 젊은 날의 풋풋했던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대신 전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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