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와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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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1-08-18 17:31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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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인류는 늘 위기상황을 돌파하며 진화해 왔다. 고통 중애도 별을 바라 보며 또 다른 태양 아래 만물의 영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2500년 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일찌기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나도 그대도 틀릴 수 있다는 걸 깊이 깨닫고 그 眞理를 전하려 했을 뿐이다. 답은 늘 상대에게 있었다.
우리가 살아 온 여정은 늘 숲 속이었고 그 길은 험난하기 이를데 없는 어두운 길로 점철되어 왔다. 곧장 다다르는 길이나 바른 길은 없다. 神에 다다르는 인간의 여정이 그렇다.
단테의 신곡 지옥 연옥 천국편에서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버질은 기사도적 서정을 이야기 한다. 죄를 깨닫고 지옥에서 출발해 연옥에서 시인의 안내를 받으며 천국에서 피렌체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모든 불행에서 행복한 상태로 머무는 것이 문학과 창작의 목표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었다. 영적 도덕적 사회적 모든 영역들이 주옥같은 언어로 그 시대를 대속하며 7세기가 지난 지금도 '떠돌이 단테'는 지식인들의 뇌리 속에 여전히 진행형이다.
비극과 비극이 길 따라 세월 따라 이어져 시대와 세대를 초원해 희극이 된다. 18새기 말에서 19세기 들러서 단테는 '리서르지멘토Risorgimento의 정신문화로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아이콘으로 소환되어 데자뷰된다.
댄 브라운의 유명한 소설 '인페르노Inferno'나 브래트 피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세븐'도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다빈치 코드'와 '로마의 휴일' 같은 영화도 다시 찿아 볼 만한 계절이다.
구원과 성장의 여정은 진행형이다. 행복은 저 높은 곳의 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을 바라보는 윤동주'와 같은 문학적 시심이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려 애썼던 나도 잘못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깨달음과 선한 마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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