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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과 南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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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1-06-14 21:0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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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서포 김만중(1637~1692)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서포로 장희빈의 치마폭에 놀던 숙종을 풍자한 '사씨남정기'로 유명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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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은 숙종의 비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의 동생이기도 했다. 1665년 친형 김만기가 시험관으로 자신이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판금부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아버지 김익겸은 정축호란 때 강화에서 순절해 유복자로 어머니 윤씨 슬하에서 형 만기와 함쎄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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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소설을 좋아했던 어머나를 위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남겼다. 어릴 적 배에서 태어나 船生이란 어릴 적 이름으로도 불리웠던 그는 예 가옥과 사철 동백이 있는 남해 유배 중에도 임금을 비판한 인물로 '배에서 태어나 섬에서 죽는 삶'을 살았다. ​

장희빈 아들의 세자책봉을 반대했던 그는 숙종의 미움을 사 파직당하고 평안도 선천으로 귀양살이도 했다. 풀려난 지 석달만에 남해의 노도로 다시 유배되어 가시 울타리에 갇혀 지내기도 했다.

사씨가 남쪽으로 쫓겨난 이야기는 중국을 무대로 한 소설이지만 사실 장희빈에 눈이 멀어 정비 인현왕후를 내쫓은 숙종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당시 백성들의 호응 속에 공전의 히트작품이 되었던 '사씨남정기'는 숙종도 읽다가 주인공의 처사에 분노해 책을 집어 던졌다고 한다. 그게 자신인 줄도 모르고 ..

북의 변방에서 남쪽의 육지 끝까지 육로만 천리길을 지나 섬으로 쫓겨 간 김만중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노도는 임진왜란 때 노를 많이 만들어 붙여진 이름으로 삿갓섬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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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가는 길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 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오는 모든 숨 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 바다 삿갓 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 돌아 가지 않으리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고두현 시인 - 서포가 노량 앞바다에서 읊었을 심경과

비애를 시로 만들어 후세에 전하고 있다.  서포는 남해 노도에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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