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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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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0-12-16 12:3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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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탄생 이래 BC 399년 독배를 마시고 숨질 때까지 고대 철학자로 살았다 플라톤의 스승으로 유명했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젊은 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부정한다는 죄목으로 터무니없는 법정에서 심판을 받았지만 "악법도 법이다"라는 금언을 남기고 갔다. 


예나 지금이나 '무지의 한계'를 모르고 교만했던 학자들이나 왕권의 주변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던 귀족들은 소크라테스를 '시대를 부정하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망쳐놓은 바이러스 처럼 경시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치부는 부정한다.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파 먹고 갉아 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임을 모르고 "인간의 무지"를 설파했던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 것이다. 그 시대에도 역병이 번져 당시 아테네 인구 1/3에 해당하는 8만명이 숨졌다. 


기원전 431년 스파르타의 공격을 받은 아테네가 성문을 걸어 잠그면서 감염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역병은 당시의 권위적인 전통계급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천국을 믿지 않았다. 하루하루 영혼을 맑게하여 덕과 선을 쌓고 '예수의 천국과 그리스도의 피만을 대신해 죽음을 살아서 예비하고 준비하라'고 설파했다. 그는 우리가 주인이 되는 사회를 꿈꾸었고 그 어떠한 억압에 의한 권위도 따르지 않을 자유와 자율적인 인간의 삶을 강조했다.


지도층과 왕권 보다 일반인 시민들을 더 소중한 존재로 신뢰했던 소크라테스는 '돈과 명예를 위해서 매달려 온 삶 가운데 진리와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라며 물질적 풍요로움과 과욕과 비윤리적인 행위가 질병과 전쟁을 유발할 것임을 예견했다.


고대 철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델포이 신전에는 어느 예언녀가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라고 기록했고 이를 본 소크라테스는 당황한 끝에 정말 지혜롭다는 철인들을 두루 찿아 다닌 끝에 "내가 모른다른 걸 아는 것" 바로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정치인 철학자 명망가 권력자들 사이 부와 명예를 다 쥐고 흔드는 재벌들이 자신의 죽는 날을 안다면 어제 처럼 그리고 오늘 또 그런 시간을 살까! '너 자신을 알라'는 진리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과 타인이 옳을 수 있다는 경청과 토론, 그리고 겸양지덕의 고전적 동양철학을 뛰어 넘는 선인의 지혜가 담겨있다.


고희를 맞은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5월 아테네의 봄이 왔던 시절 디카스테리아라는 시민법정에 섰다. 당시 권력자인 아뉴토스의 사주를 받은 멜레토스가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로 고발한 것이다.


스파르타와의 페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참패하고 전염병이 창걸하던 당시 아테네의 집권자는 소크라테스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6000명의 신청자 중 당일 기계식으로 추첨된 500명의 배심원들이 기다리던 법정은 아테네가 자랑하던 민주주의 방식이었다.


첫 번째 재판은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를 두번째 재판은 형량을 따지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포기하고 떠나면 석방하겠다'는 회유를 받지만 진리와 지혜 앞에 '知'를 깨닫고 실천하지 못하는 삶은 음미의 가치가 없다'


500명의 배심원 중 구멍이 뚫린 도자기를 투표함에 넣은 자가 280표(유죄) 무죄로 구멍이 뚫리지 않은 도자 조각을 넣은 자가 220(무죄)로 유죄가 선고 되었다.


두번째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선고 후 구류 벌금 추방 침묵강요 등 네 가지 중 하나를 요청할 수 있었음에도 소크라테스는 턱없이 낮은 금액의 벌금을 요청함으로 배심원의 심기를 건드렸다. 결과는 사형 360표 벌금형 160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사형이 결정되었다.


많은 친구들과 제자들이 탈옥 및 망명을 권유했고 돈 많던 친구 크리콘은 뇌물을 써서 풀려나게해 주겠다고 권유했지만 "내가 도망치면 고발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미나리가 독배를 마시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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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진리와 지혜를 찿기 위해 목숨 바친 그를 예언한 글이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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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nothi seau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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