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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천사였나 민중의 사치였나 ,에바와 후안 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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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0-11-24 03:4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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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아르헨티나 100페소는 약 1400원이다. 유명한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의 주인공 에바 페론은 대통령 보다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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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두번이나 지낸 후안 페론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1919년 5월 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는 15세 때 가출해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갔다. 


예술적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성공을 향한 열망으로 모델 성우 극단의 배우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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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아르헨티나 군부의 실력자이자 노동부장관 후안 중령을 만나고 쿠테타 세력에 잡혀간 그의 석방운동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주도해 10일만에 석방된 후안과 1945년 정식 결혼한다.


1946년 대통령선거에서 후안과 동행하며 열정적인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후안이 당선되어 1955년까지 대통령으로 에바는 영부인으로 활약한다.다.


에바는 정부내 공식직책은 맡지 않았지만 노동자와 빈민 그리고 여성들을 위한 복지정책 등으로 인기를 누린다.


1973년~1974년 두 번째 집권과 사망으로 후안은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가장 큰 논란과 회한을 남긴다. '페론주의'의 역풍이었다.


대통령을 하던 후안 도밍고 페론은 에바와 함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무리한 복지정책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손꼽히는 부자나라 아르헨티나를 추락시켰다.


후안 페론의 사망으로 그의 세 번째 부인 무용수 출신의 이사벨 페론이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승계받았으나 재정파탄과 정치혼란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다가 1976년 쿠데타로 실각했다. 


한 나라의 운명은 국가의 지도자가 자신의 부귀영화와 정치이념이 아닌 국민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EVA!1978년 영국에서 초연된 뮤지컬의 실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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