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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박래현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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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0-11-23 02:1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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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2020년 9월 29일~ 2021년 1월 8일끼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동양화가 박래현 삼중통역자 탄샌 100주년 특별전시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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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1920년~1976년)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경성사범대학 다녀 일찌기 고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 1940년 여자미술학교 사범과 일본화부에 입학 조기 졸업했다. 공부를 한 동양화가다. 


20세기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기창(1913년~2001년) 화백 부인으로 올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 생애와 예술세계를 되돌아 보고 138점 유작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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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박래현 작가는 부군 김기창 화백 보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예술적 동지로서 오히려 운보 김기창 화백에게 영감을 많이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전시의 부제인 삼중통역자 박래현'의 삼중통역자라는 말은 첫 째 청각 장애인이던 남편 김기창을 위해 영어 일어 한국어에 구화(수화)로 3중 통역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회화(동양화) 판화 그리고 태피스트리라는 세 가지 쟝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펼쳐 온 박래현의 일생을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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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과 추상 , 판화의 예술  오랜동안 붓으로 그리는 여백의 동양화를 하다가 뉴욕에서 판화를 만났다. 작품 '기원'은 인간의 시작 세상의 시작 그리고 혼돈의 시작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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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삶' '희열의 상징' '가면' '계절의 인상' 등이 대표작이다. 미국에서의 유학시기에도 태피리스트로서의 작업은 계속된다.  퀄트나 조각보 처럼 수묵화에 농담을 주어 개개의 부위가 미묘한 조화를 이루어 다르게 보이는 등 지필묵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표현까지 캔버스나 한지 화선지 등의 여백을 채워 작품으로 완성해 낸다.


귀국 후 한동안 손대지 않던 작업을 지 필 묵을 다시 꺼내 '연화' 석류' '어항' '고완' 작품' 5점은 판화에서의 실험을 회화에 접목시킨 결과로 박래현은 스스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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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20호 내외의 소박하고 검소한 작품으로 부부가 함께 두꺼운 장지에 화선지를 덧대고 동판화용 스프레이로 접합한 뒤 먹과 석채를 덧입히고 또 덧 입힌 작업으로 만들어낸 바탕은 판화는 광물의 오묘한 마티에르가 마치 오래된 고분벽화를 보는 듯한 신비한 기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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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완성한 박래현의 작품 '어항'은 1950년대 작품 '금붕어'와 동일한 소재였지만 금붕어의 활기가 보이지 않는 '어항'을 그렸다.

오랫동안 물갈이를 해 주지 않은 '어항'에는 금붕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박래현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 미국을 잠시 다녀 오는 동안 간암 진단을 받고서도 '앞으로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할 지  어떤 작품을 남겨야 할 지 알것 같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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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보내 온 난초를 그려 달라던 남편 운보 김기창의 부탁으로 남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김기창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삶의 동기부여가 되어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고 회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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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에도 우향 박래현 화가는 1976년 1월 2일 병세가 악화되어 성북동 자택에서 영면했다. 박래현의 작품은 남편 운보의 작품과는 달리 팔리지 않아도 될 자신만의 기하학적 관점에서 조형미를 가춘 소박한 작품들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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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의 '노점' 1956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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