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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루트와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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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0-11-14 10:4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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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1968년 1월 30kg의 중무장 공비 31명이 철책을 뚫고 청와대 턱밑까지 침투한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북악산 끝단 40km 북단 끝에서 험준한 능선과 산악 계곡을 시속 10km의 속도로 4박5일에 걸쳐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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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17일 밤 10시 북한 124군부대 소속 31명의 일당들이 경기도 연천 고랑포에서 낮은 자세로 10km의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 개머리판을 접은 AK소총 실탄 300발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 한 채 파평산 500고지를 넘었다.

18일 새벽 삼봉산에 도착 한 뒤 하루를 산중에 머무는 동안 나무하러 온 우씨 형제 4인을 우연히 만나 이들의 처리를 북측에 물었으나 암호해독이 안되어 풀어 주고 이틑날 19일 밤 고령산 앵무봉(622m)을 통과 경기도 양주 노고산을 거쳐 북한산에 다다랗다.  

풀려난 우씨 형제들은 망설임과 상의 끝에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의 신고 3시간 후 합동참모본부에 침투사실이 전달되어 '운명의 삼봉산'이 되었다. 나중에 해독된 북측의 암호는 '원대복귀'였다고 한다.

30kg의 완전군장으로 험준한 산악을 시속 10km의 초인적인 속도로 침투한 공비들은 창릉천 너머로 구파발과 송추를 잇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관사 부근에서 군복을 배낭 속에 준비한 사복으로 갈아 입고 비봉을 거쳐 승가사에서 휴식에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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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2시 국방부는 송추 인근에서 그들의 유실물을 발견했지만 그들은 이미 북악산 대신 세검정으로 방향을 돌려 21일 오후 세검정 상명대 삼거리를 지나 창의문(자하문)고개를 지나고 있었다.

종로서장 최규식 총경이 검문 중 그들의 총탄에 쓰러졌고 특수부대 대원들은 북악산 세검정 등으로 흩어졌다. 김신조는 경복고 후문 방향으로 튀었다. 세검정에서 생포당한 김신조는 지금까지 '체포가 아니라 투항'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23일까지 북한 공비 27명이 사살되고 군경 23명 민간인 7명이 사망했다. 김신조를 제외한 3명 중 한 명은 양주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2명은 다시 북으로 넘어 간 것으로 파악되고 사건은 종료 된다.

1.21 사태 이후 예비군이 창설되고 주민등록증이 생긴다. 군 장병들의 제대가 6개월 연자오디어 미뤄지고 3군사관학교가 들어서고 실미도에 684 특수부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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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31명의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루트는 철책으로 경비가 세워지고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기를 50년 지난 10일 새로 열린 북악산 곡장 전망대는 그런 비운의 역사를 담고 있다. 오후 4시가 되면 다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거짓말 처럼 과거로 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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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와대를 지키던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군의 특수임무가 아닌 측근의 총탄에 가고 광화문은 아직도 차벽으로 불안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70년 현대사의 질곡과 반세기가 넘는 남북간의 대치 속에 변한 건 무엇이 있을까? 높은 빌딩과 삶을 조이는 높은 물가 불안한 민심 외 무엇이 있을까. 대한민국으로 남아 세계사의 문명국으로 한반도의 주역으로 살아 남은 축복이 있다. 

얼마 전 집권당의 김태년 원내대표는 국회대표 연설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의 세종시이전을 공개적으로 역설했다. 안보상의 이유로나 지역균형 발전으로나 진정한 광화문시대를 여는 의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북악산과 우이령 계곡 등이 아직까지 그런 것처럼 1968년 1월 한 겨울 당시 27세의 김신조 외 그의 일당들은​ 무엇을 위하여 목숨을 건 특수임무를 감행했을까. '집단 속에서 개인과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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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태 이후 북한군의 변화는 무엇이며 그 동안 대한민국의 청와대는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해 왔는가. 지금의 실세들과  함께 청와대를 움직이는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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