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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수학자 - 이임학 1922~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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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4-03-20 04:1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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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1947년 '미국수학회보'에 실린 미해결 문제를 자신이 풀었다'는 사실을 알린 당시 25세의 서울대 수학과 이임학 교수를 아는가! 


1945 해방 이후 일본교재를 대신 할 한국어 수학책의 절실함으로 고민하던 이임학은 영미건 대학교과서에 나오는 학계의 동향이나 이론을 알고 싶었다. 1947년 정국의 혼란으로 구할 수 없었던 그런 자료들은 뜻밖에 남대문 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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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버린 서적들 사이에 미국 수학회보를 발견하고 1947년 미국 수학회보에 실린 미해결 문제를 자신이 풀었다'고 했던 미국의 저명한 수학자 막스 초른 교수는 그 내용을 미국 수학회보에 실었고 논문의 투고 방법도 제대로 몰랐던 한 이임학 선생은 1953년 캐나다에 도착해서야 자신의 논문이 실린 미국 수학회보를 보았다. 1949년 미국 수학회보에 한국 최초 국제 학술논문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이듬해 1948년 이임학 선생은 미국 대학에서 널리 사용되던 '미적분학' 교재를 한국어로 번역해 고등수학 교재로 만들었고 '대수학' '평면기하학' 등 7권의 수학관련 책을 저술했고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갈루아와 나란히 세계 최고의 천재 수학자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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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듬해 경성제국대학은 경성의학전문, 경성광산전문, 경성공업전문, 등 관립전문학교 9곳을 합쳐 서울대학교를 만드는 일로 대학자치를 둘러싼 논쟁으로 학계가 분열되어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교수 38명이 집단으로 사표를 냈다. 


북한은 이들을 김일성대학으로 초청했고 이들 중 수학과 교수 김지정, 유충호가 이북을 택했고 함흥에 가족이 있던 이임학이 이후 합류했다. 1946년 10얼 서울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이들 세 수학자들의 빈 자리를 최윤식 교수가 맡아 주임교수가 되었고 북한의 실상에 환멸과 반감을 느낀 이임학은 1947년 서울대 수학과에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최윤식 교수가 그를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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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이임학 교수는 인민군의 침략을 피해 숨어 지내다 부산 전시 서울대 캠퍼스에 합류했다. 미국 공보원에 수시로 들러 미국 학술지를 보던 이임학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제닝스 교수의 논문오류를 보고 편지를 보냈다. 


이임학의 천재성을 알아 본 제닝스 교수의 초청으로 캐나다로 간 이임학은 2년만에 박사학위를 하고 대수방정식의 풀이를 위한 군론연구로 20세기 현대수학으리 흐름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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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수학계의 단순론 발견이 이임학의 업적이었으며 세계 수학사의 주요 이정표로 'Ree군'은 캐나다 왕입학술원 정회원이 되었다. 미국 영국 일본의 수학인명 사전에 수록되었고 세계적 권위 역사서 '순수 수학의 파노라마'에는 군론분야의 위대한 수학자 21인의 한 사람으로 프랑스의 갈루아와 같은 전설적인 수학자와 같은 반열의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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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다녔던 이력과 사상의심 등으로 여권연장이 되지 않았고 갖고 있던 여권조차 회수되었던 이임학은 무국적자로 살았다. 캐나다정부의 도움 등으로 연구를 이어갔던 이임학은 1996년 대한수학회 창립 50주년행사 초청으로 잠시 모국을 방문했지만 국적회복이 되지 않은 채 캐나다로 다시 되돌아 갔다. 


캐나다 시민권자로 살다 모국과 한국어를 그리워 하다 2005년 타계했다. 국가란 무엇인지 이념의 장벽이 천재 수학자를 만리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묻히게 했다. 천재를 버린 나라다. 사상이 무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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