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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과 패권주의 일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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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4-02-03 21: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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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1876년 강화도 조약은 개방과 개화, 그리고 개혁이라는 희망 속의 신문화 코드로 우리 근대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500년 李氏이씨 조선의 쇄국정책은 1884년 갑신정변 그리고 10년  후 1894년 갑오개혁으로 세도정책의 군주정치를 무너뜨리는 농민운동으로 가시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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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6월에서`~7월 사이 일본의 조선에 대한 출정은 외세의 개항과 더불어 긴박한 긴장감 속에서 명치유신의 일본의 대업을 본받아 500년 봉건군주체제의 타파와 근대국가의 모습을 '갑오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된 기조로 후일 한일합방의 빌미가 되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개전과 함께 국군기무처를 설립하고 221건의 의안으로 조선내정간섭을 본격화 했다. 1895년 '홍범14조'를 개혁의 근간으로 일본은 여러가지 개혁방안을 실행했다.


18994년 갑신정변은 김옥균의 피살로 정변으로 끝나고 고종은 연루자 전원을 대사면함으로써 동학 농민군과의 화해와 국정의 쇄신을 도모했다.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3인은 김옥균의 노선에서 미국으로 방향을 잡고 '갑신년'의 경솔한 거사에서 세계정세에 비추어 조선의 나아갈 길을 고종에 상소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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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미국과의 수교 이후 청국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신분제도의 혁파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기에 힘써왔다. 1886년ㄴ에는 노비의 세습문제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명성왕후의 시해사건과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 즉 아관파천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선의 근대국가로의 개화는 '조선내정'의 빌미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한일합방의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독재 36년간의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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