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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저항정신과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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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3-04-25 13:0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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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서기 66년 예루살렘에서는 대규모 반란이 있었다. 유일신으로서의 유대인들의 신앙과 성전을 로마의 총독이 더렵혔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로마의 황제는 네로였다. 예루살렘의 반란으로 위협을 느낀 황제는 4개군단을 전투대형으로 소집하고 명장 베스파시아누스를 총사령관으로 예루살렘을 고립시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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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명의 로마군을 대항하기에 2만 3000명의 유대병력은 역부족이었다. 함락된 예루살렘 성 안에는 무차별 살육과 약탈이 자행되었다. 성정에 숨어 있던 여자와 어리아이 6000명은 산 채로 불태워졌고 방화로 성전은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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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유대인 240만명 가운데 절반이 살육당하던 시기였다. 이 환란 가운데 사제들은 모두 사라지고 유대교는 평신도의 종교가 되었다. 최고 정점의 친로마 헤롯당과 사두개파 왕가의 지지자들과 모세5경만을 성서로 받들어 제사장의 職을 맡았던 위인들이 사라져 존재를 찿을 수 없었던 시기 민중의 지지를 받던 바리새파만이 유대교의 명맥을 이어 구전과 율법을 지켜 나아갔다. 


한편 속세를 떠나 황야와 사해부근에서 금욕의 공동체생활을 하던 에세네파는 사악한 제사장들이 더럽힌 성전을 떠나 사막에 살면서 빛과 어둠의 아들 사이에 빛의 아들이 12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믿어 독신생활로 금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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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로마 유대전쟁에서 유대인들이 최후의 항전을 벌이던 곳은 마시다 요새다. 예루살렘의 함란 후에도 로마에 굴복하지 않앜ㅆ던 960명의 유대인들은 '로마의 노예가 될 바엔 차라리 자유인으로 죽겠다'는 심정으로 의기투합해 2년 이상을 버텼다. 


로마는 최초의 승리의 개선문을 세우고 유대인들을 노예로 하여 콜로세움을 세웠다. 현재 마시다 언덕에서는 이스라엘군이 선서식을 거행하고 '더 이상의 더 이상의 마시다는 없다' 결기로 다시는 이런 아픔을 반복해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이후 서쪽 계곡은 '통곡의벽'이 되었고 해외 유대인들은 이곳의 흙을 병에 담아 머리에 두고 조국을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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