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세상만사

HOME > YouTube > 구기자의 세상만사
구기자의 세상만사

이스라엘의 국부 - 시몬 페레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2-11-01 10:35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748_3101.jpg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918_8595.jpg
 

[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1993년 이스라엘의 외무장관이던 시몬 페레스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켜 보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자치확대애 대한 원칙선언'에 서명했다.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514_0775.jpg


이로써 시몬 페레스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PLO의장과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 한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영원한 적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평화협정을 맺고 이듬해 199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530_2724.jpg
 

세기의 화약고 중동지역의 영구평화를 위한 그의 신념은 '전쟁을 이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한 국방력 군사력으로 미리 막는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침공을 예상하고도 전쟁을 미리 막지 못해 처참한 꼴을 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다.


시몬 페레스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 체토와 소련으로부터 대랭의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시몬 페레스는 서방의 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에 맞서 우호적인 동맹국을 찿아 다녔다. 


1956년 7월의 이집트와의 제2차 중동전은 프랑스와 영국이 관리하는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전격 선언하고 점령해 버린 이집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발발되었고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프랑스를 눈여겨 본 시몬 페레스는 이스라엘이 절대 군사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프랑스와 원자력기술 도입을 위한 협상에 매달려 성공했다. 결과는 이스라엘을 원전과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581_8492.jpg
 

바닷물을 식수로 만드는 담수화작업에 성공했고 핵보유 사실을 시인도 부인도 하지않는 '핵보유의 모호성'으로 이스라엘을 전쟁으로 부터 지키는데 '전쟁억지력'을 스스로 갖게 됨으로써 군사적 안정을 확보했다.


시몬 페레스는 가상의 전투훈련에 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활용했고 그 결과는 첨단무기체계를 개발하는데 요긴하게 쓰이도록 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이 끝날 무렵에는 더 이상 재래식 무기는 현대전에 쓸모가 적다는 생각에 이스라엘 군대는 중앙컴퓨터 처리부대를 창설하고 '맘람'이라는 이름의 전자전을 수행하고 있다. 


1979년 인재들을 모아 현대전 전문요원으로 '틸피오트'가 창설되고 IT기반의 사이버 보안부대가 정보부대 역할을 맡게됨으로써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어 자국의 안정을 확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위성들로 운용되는 무인항공기 드론기술 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돔'은 이스라엘만의 특별한 군사체계로 아스라엘의 스타트업들은 주로 IT기술과 방산업과 관련 창업국가로 하이테크 첨단기술 산업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고대 유대인들은 '능력껏 벌어 마음껏 나누어 쓴다'는 믿음으로1948년 건국 당시 집단농장 키부츠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했다. 구약시대 이후 재림예수 2000년을 방랑생활로 영토없는 디아스포라의 이스라엘 유대민족들은 서로의 고통을 이야기 하지 않고 상대를 험담하지 않는다는 공동체의 수칙으로 세계적인 부와 안전을 지켜왔다.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614_3276.jpg


1984년 시몬 페레스가 총리가 되던 해 무려 400%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대규모 사회적 구조조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특히 노동당을 기반으로 정치를 입지를 쌓아 왔던 시몬 페레스는 자신의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경하는 등 노사양측으로 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으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시몬은 노동조합과 고용주연합 그리고 재무장관 경제학자를 주축으로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협상과 협의를 계속해 나아가 1985년 인플레이션은 1%대로 떨어져 기적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993_4998.jpg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996_8185.jpg
 

인구 천만도 안되는 작은 나라 석유도 자원도 없는 나라의 1992년 외무장관 시절에는 주요국 방문을 통해 벤처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정부의 창업ㅈ지원 프로그램 '요즈마펀드'는 군대의 방산관련 기술과 IT기반의 첨단 무기체계를 국방 군수 관련 산업으로 이른바 펀드 중의 펀드가 되었다. 


2007년 이스라엘 대통령이 된 시몬 페레스는 젊은이들의 도전의식과 애국심 그리고 청년들의 열정을 창업으로 연계하여 세계 제1의 창업국가로 당시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기업 외 글로벌그룹 대기업 수준의 세계적인 강소국으로 국민소득 5만5천불의 GDP를 기록하게 했다.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673_8082.jpg
 


'삶은 너무나 거룩하고 짧기에 비판이나 좌절의 시간에 세상을 멋과 맛, 그리고 향기를 만끽하는 꽃으로 보라'는 말과 함께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라는 이름의 저서를 남기고 2018년 떠났다. 이스라엘은 위대한 창업국가다.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474_1838.jpg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7145_2135.jpg
1976dbd854854269372a48ad4558619d_1667266687_185.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