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하얼빈 - 칼의 노래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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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2-08-07 00:11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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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칼의 노래'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 총탄은 "동양의 평화"를 세계만방에 발사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김훈 작가는 그런 안중근의 '大義' 보다 일곱발의 실탄과 여비 100루블로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가난한 청년의 열기에 주목했다.
1948년생 김훈 작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둔 '안중근'에 대한 작가로서의 결기를 글로 소설로 풀었다.
젊은 시절 빛나는 청춘의 안중근을 그려 보려고 했다. 짧은 생에 품어낸 에너지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일본국 초대 총감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사건이다.
내가 '이토를 죽인 것으로 죽은 이토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 한국 독립운동사에 의병참모중장으로 거침없는 자세는 재판과정에서나 거사 이후의 조사과정에서 일본인들에게 할 말을 잊게 했다.
중근에게 '도마'라는 세례명을 주었던 빌렘 신부는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나는 길에 중근에게 말한다. '惡을 惡으로 갚는 자리에는 惡만 남을 것'이라고 이토를 저격하기에 이르기 까지의 증오는 세례에서 맛 본 '빛과 평화'와 다르지 않았다.
안중근 - 그에게 있어서의 거사는 살인이라는 폭력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 '헌신'이었다. 이순신의 '칼의 노래' 우륵의 '현의 노래'라면 안중근의 '총의 노래'는 일본제국의 혈을 끊고 동양의 평화를 노래한 것이다.
판단을 섣불리 할 일이 아니다. 사실과 진실 환경은 늘 권력 앞에서 순서가 뒤바뀐다. 남한산성에서 그러했고 국사와 임금을 둘러 싼 환관들이 그랬다.
김훈 작가의 결기 또한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것으로 동양의 평화가 완성되지 않았다. 동양의 평화 -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은 아직도 안전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훈 작가는 "동양은 지금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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