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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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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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2-07-08 07:4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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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일제는 천황의 궁궐보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정작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외에도 궁궐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는 1932년 도로를 만들어 갈라 놓고 박람회 전시회 등을 열어 훼손하고 갈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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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1932년 갈라놓은 창경궁과 종묘길 율곡로가 12년간의 공사 끝에 기존의 도로를 지중화하고 상부를 녹지와 산책로 등으로 이어 90년만에 다시 만났다.


율곡로가 지하화 되면서 그 길 위를 정성껏 흙으로 덮어 두 궁궐과 종묘를 하나의 커다란 숲으로 조성되었다. 상암 축구장 보다 큰 규모다. 2010년 부터 시작된 창경궁과 종묘의 연걀 복원 사업은 긴 공사 끝에 22일(토) 부터 시민에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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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당시 오세훈 시장이 첫 삽을 뜬 '창경궁 종묘 연결 복원사업이 12년만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돈화문 앞길에서 동대문 방향 율곡로가 원남동 로타리 초입 부터 2중 터널로 지중화 지하화 되어 흙으로 덮히는 상부를 산책로 등으로 조성하여 원래 하나의 궁궐이었던 창덕궁과 창경궁 본래의 모습을 뢰복ㅇ하게 된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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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궐으로도 불리웠던 창경궁과 창덕궁은 북악산 응봉에서 뻗어 내려 온 숲을 따라 종묘와도 이어져 조선의 위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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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5월 창경궁 쪽으로 도로가 착공되면서 종묘의 유서깊은 담장이 헐리고 고유의 궁궐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1912년 11월 도심에 바둑판 모형의 현대식 도로 29개를 놓는 경성 시구개수안을 발표하고 그 가운데 궁궐을 훼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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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는 동궐과 종묘의 주된 수종으로 250여 그루의 소나무가 심어지고 500여 그루의 나무로 조경이 잘되어 사계절 고궁의 禮스러운 멋과 고즈넉한 도심 속의 고요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흙을 덮어 산책로를 만들고 주변의 보관해 두었던 돌을 쌓아 궁궐의 담장을 고풍스럽게 복원해 냈다. 경사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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