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 윤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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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2-02-15 12:5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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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의로운 정치인이었다. 인천지역의 노동자연맹 사건으로 3년간의 수감생활도 했다. 노동현장에서 정계입문 후 제 17,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인물이다.
1956년 8월 31일생 부산출신의 그는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위해 정의로운 일에 앞장 섰던 그는 2018년 두루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던 중 7월 23일 오후 9시 38분 서울 중구 신당동 한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에서 투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 재수 끝에 경기고등학교를 입학해 1976년 졸업했지만 대학입시에 떨어진 노회찬은 재수를 하지 않고 곧바로 자원입대하여 병장으로 만기전역 후 1979년 고려대학 정외과에 입학했다.
데학 입학 후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거리로 나온 민중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을 목도한 그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은 권력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조직화 된 힘이라 믿었다.
이름도 없이 얼굴없는 투명인간으로 살던 무수한 근로자들과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의 가치를 체험으로 겪고 알았던 '진리 위의 자유' 그것이 오늘날 진보진영의 교과서 처럼 추억되고 있다.
2022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등록을 마친 들의 현수막이 밤새 거리릐 요소요소에 걸렸다. 이제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된 것이다. 명연설이나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들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공감과 감동은 없고 상대 흠결 따라잡기인 양 진흙탕 이전투구에서 후보들이 남긴 남긴 공약을 모두 합치면 얼마의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할까까? 그들 후보들의 자취를 뒤돌아 보다 문득 '노회찬의 6411' 버스를 소환해 보았다.
지금 듣고 보아도 진한 감동과 울림이 전해진다. 서울 변두리 외곽의 새벽 첫 버스는 4시에서 4시 반 사이에 출발한다. 5시 이전에 이미 만원이 되어 앉을 자리가 없는 6411번 버스에는 바닥에 앉아 어제의 노고가 다 풀리지 않은 모습으로 강남으로 가는 환경미화원 등 노동자 근로자 아주머니 할머니 등의 출근길이다.
이름없는 누구의 어머니로 아내로 무명의 헌신으로 일생을 살아 온 투명인간들을 위한 정의롭고 투명한 정치를 하자고 외치던 그가 남긴 말이다. 소통과 상생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공정과 정의는 그의 신념이자 정치철학이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법과 정의' 공정과 신뢰'는 누구든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주장하는 것 처럼 잘 되지 않는 내로남불의 사회가 되었다. 소고기를 경기도 법인카드를 사먹고 그 카드로 시켜서는 안되는 초밥을 10인분이 시켜다 먹었다.
대장동 개발특혜 사건과 관련하여 단 1원도 안먹었다는 그 분의 가족이야기다. 그런 조국은 민정수석을 끝으로 온전하게 교수로 돌아가지 않고 한달 짜리 법무부장관 하는 동안 온 나라를 둘로 갈라 놓았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외쳐던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은 아직도 현역 국회의원으로 살아 있다. 21대 국회의 여러가지 치욕 중 하나로 최악의 국회사國會史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윤미형의 흑역사'는 본 칼럼에서 더 논할 가치가 없어 '노회찬의 정의'와 비교해서 기억하시라고 이름만 떠올렸다. 2022년 3월 9일 이후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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