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저항시인 이육사 1904~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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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2-02-03 17:5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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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구충모 기자] 근대 문인 가운데 일제 침략에 항거한 저항시인은 만해 한용운(1879~1944), 이육사(1904~1944), 윤동주 (1917~1945), 이상화(1901~1943) 심훈(1901~1936) 등을 꼽을 수 있다.
1930년 1월 3일 자 조선일보에 '말' 馬이라는 詩 " 오 먼 길에 지친 말, 채찍에 지친 말이여~ / 새해에 소리칠 흰 말이여! "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 육사의 첫 작품이다.
퇴계 이황 선생 가문의 14대 손으로 안동 선비집안의 자손으로 그의 형 이원기 동생 이원유와 함께 1925년 스물 한살의 나이로 무장 독립운동을 펼치던 조선의열단 활동을 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당시 대구형무소 수감 시절 수인번호가 264인데서 '육사'라는 호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치욕의 역사 속 '죽이고 싶도록 치욕스러워 죽일 '戮' 자를 자청했다는 후문이다.
유리 처럼 맑고 깨끗한 얼굴에 항상 활기찬 미소와 조용한 말씨와 기품의 시인은 '청포도' '절정' '광야' 와 같은 불세출의 詩를 남겼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1932년 시인은 항일운동을 위해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갔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저항한 이육사의 본캐는 총을 든 독립투사였고 부캐가 시인이었던 것이다.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 익어가는 시절..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찿아 온다"라 했으니 푸른 도포를 입은 손님이란 조국광복과 자유평화를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라고 한 그의 시 '절정'은 일제 침략을 무찌르는 강철 같은 기개와 행동을 상징한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노라"
일제에 항거해 17번이나 투옥 되었던 '육사'는 1943년 잠시 귀국 중 다시 체포되어 애석하게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1월 16일 감옥에서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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