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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크림트 ( 1862~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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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충모 작성일21-11-21 00:4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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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기자협회= 구충모 기자]  구스카프 크림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다. 주로 여성의 신체를 주제로 회화 벽화 스케치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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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정통 보수주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빈 분리파'의 기수로 격동의 19세기 당대 동시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와 동생이 귀금속 세공사였던 그는 자신의 그림에 황금색을 엷게 입혀 작품과 연계된 금빛 액자를  만들 만큼 구스타프는 회화와 공예를 그림에 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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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영감을 얻어 동심원과 소용돌이 삼각형과 사각형의 다양한 형상으로 다채로운 패턴을 만들어 냈다. 그림 속의 의상은 인물을 휘감아 주변으로 퍼져가는 한 폭의 추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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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고급  맞춤복 정장 오뜨 쿠튀르 패션쇼​의 모델들은 아예 걸어다니는 구스타프 크림튼의 그림이라고 할 정도였다. 크림튼의 작품은 실제로 생활 속에서 서회적인 통념울 바꾸는 역할하며 성장 했다.

크림튼의 대표작 '키스'를 보면 비잔틴 제국의 성당들의  천장화가 연상되는  낙원을 보는 듯  구스타프 특유의 절정의 찰나의 순간을 연상하게한다. 삶에 있어 성적충동이나 파나토스 죽음에 충동 사이에서는 치명적으로 팜므 파탈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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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결혼하자 않고 살았던 구스타프는 100년 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을 때 무려 14명의 사생아가 나타났을 정도였다. 상대여인들은 주로 그의 작업실에 상주하던 모델들이었고 가끔은 그의 그림을 사가는 상류층 귀족들의 부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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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처럼 자산의 영역에서 떠들썩하게 살았던 그가 죽지 전 많은 여인들이 그를 찿았지만 유산의 절반은 25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던 엠밀리 플뢰게라는 여인에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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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뢰게 자매'는 고급 양장점을 경영했고 당시 상류층 여인들의 유행을 선도했던 배경에 크림트와의 플라토닉한 사랑의 힘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래 저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지만 서로를 마주하는 사랑의 힘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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